
염증이 착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야" 했습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위염, 비염, 피부 트러블까지 크고 작은 염증을 달고 살았는데, 그동안 염증은 무조건 없애야 할 나쁜 신호라고만 여겼습니다. 근데 알고 보니 염증의 의도는 원래 착했고, 문제는 제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염증은 원래 착한 소방관이었다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란 우리 몸이 외부 자극이나 손상에 반응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면역 작용입니다. 균이 들어오면 잡으러 달려가고, 세포가 다치면 복구하러 달려가는 일종의 소방관이자 경찰관입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 소방관이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출동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작은 불씨인데 열 명이 달려오고, 그 불씨가 매일 반복되면 어느 순간 장기가 조금씩 망가집니다. 이렇게 면역 반응이 지속적으로 낮은 강도로 활성화된 상태를 만성염증(chronic inflammation)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소방차가 하루도 쉬지 않고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상태입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이승훈 교수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염증을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봤고, 만성염증을 나쁘다고 단정 짓기 전에 "왜 그러니, 뭐 때문에 화가 났니"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 말이 꽤 와닿았습니다. 한의원, 내과, 피부과를 전전하면서 그때그때 염증을 억제하는 처방만 받았지, 왜 염증이 자꾸 생기는지를 따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뇌졸중 연구에서도 이 관점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뇌경색(腦梗塞, cerebral infarction)이란 뇌혈관이 막혀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기는 질환인데, 혈관이 막히는 1차 손상 이후에도 염증 반응이 지속되며 뇌세포가 추가로 죽어나가는 2차 손상이 발생합니다. 이 2차 손상의 핵심 원인이 바로 과잉 염증 반응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염증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지금의 "염증이 나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hs-CRP 수치, 건강검진표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만성염증이 있으면 뭔가 신호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만성염증은 특이적인 증상이 없습니다. 찌뿌둥하다, 무기력하다, 이런 증상들이 만성염증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의학적으로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치로 보는 것이 훨씬 명확합니다. 만성염증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혈액 지표가 바로 hs-CRP(고감도 C-반응성 단백, high-sensitivity C-reactive protein)입니다. hs-CRP란 우리 몸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날 때 간(肝)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로, 전 세계 병원에서 염증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지표입니다. 국내 기준으로 0.2mg/L 이하가 정상이며, 이 수치를 넘어가면 만성염증이 진행 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검사가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의사들도 잘 모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임상 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이 지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러면 지금까지 뭘 검사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치의에게 따로 요청해야 측정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만성염증 단계를 자가 점검하는 핵심 지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hs-CRP: 국내 기준 0.2mg/L 초과 시 만성염증 의심. 혈액 검사 시 별도 요청 필요
- 당화혈색소(HbA1c): 혈액 내 적혈구에 포도당이 결합된 비율로, 최근 2~3개월의 평균 혈당 상태를 반영합니다. 6.0% 이상이면 당뇨 전단계 진입 가능성
- 허리둘레: 남성 90cm, 여성 85cm 초과 시 내장지방 과다 의심. 내장지방은 CT 없이 허리둘레로 간접 측정
- 혈압: 130/85mmHg 초과 시 만성염증 위험 요인으로 간주
이 네 가지 중 하나도 해당하지 않으면 0단계, 하나 이상이면 1단계로 분류됩니다. 경동맥 동맥경화(動脈硬化, atherosclerosis)나 용종 같은 구조적 변화가 발견되면 2단계입니다. 동맥경화란 혈관 내벽에 지방과 염증 산물이 쌓여 혈관이 딱딱해지고 좁아지는 상태로,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된다는 점이 특히 무섭습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출처: PubMed Central)에서도 hs-CRP 수치가 심혈관 질환 및 당뇨병 발생 위험과 유의미하게 연관된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현대인이 만성염증에 취약한 진짜 이유
만성염증이 이렇게 흔해진 이유가 뭘까요? 저도 처음엔 스트레스나 가공식품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답은 칼로리 과잉입니다.
우리 몸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체온 유지에 약 70%, 신체 활동에 약 20%, 그리고 남은 에너지가 면역계로 갑니다.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칼로리 공급이 충분해지면서 면역계에 에너지가 넘치기 시작했고, 이것이 면역 과잉 → 만성염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과거에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했던 건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반대 문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내장지방(visceral fat)은 이 과정의 핵심 고리입니다. 내장지방이란 피부 아래 축적되는 피하지방과 달리 복강 내 장기 주변에 쌓이는 지방으로, 단순한 에너지 저장소가 아니라 호르몬 분비 기관입니다. 지방세포가 과도하게 커지면 염증을 악화시키는 사이토카인(cytokine, 면역 세포가 분비하는 신호 전달 단백질)이 다량 분비되고, 이것이 인슐린 신호 전달을 방해해 당뇨로 이어집니다. 당뇨가 생기면 혈당이 오르고, 혈당이 오르면 비만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저는 마른 체형이라 내장지방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허리둘레를 제대로 재보니 기준치에 꽤 가까웠습니다. 이른바 마른 비만입니다. 겉으로는 날씬해 보여도 복부 내장 지방이 상당한 경우인데, 이 경우에도 당뇨 발생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 제경험상 꽤 충격이었습니다.
심리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시키고, 이 코르티솔이 면역을 억제합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억제된 면역 세포들이 어느 순간 과잉 반응으로 폭발한다는 점입니다. 질병관리청(출처: 건강정보포털)에서도 만성 스트레스가 심뇌혈관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뇌졸중을 직접 유발하지는 않지만, 이미 혈관 건강이 나빠진 상태에서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만성염증을 줄이는 데 실제로 효과 있었던 습관들
음식, 운동, 수면. 이 세 가지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얼마나 수치에 직접 영향을 주는지는 직접 바꿔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안 납니다. 저는 생활습관을 바꿔본 뒤에야 "아, 이게 진짜구나"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음식에서 핵심은 소화 난이도입니다. 정제된 흰쌀, 부드러운 빵,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소화기관의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들어오자마자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과잉 칼로리로 쌓입니다. 반면 통곡물처럼 거친 식재료는 소화 과정 자체가 에너지를 씁니다. 맛은 덜하지만, 몸에게 할 일을 주는 음식입니다. 저는 현미밥으로 바꾸고 나서 식사 후 오는 졸음이 훨씬 줄었는데, 혈당 스파이크(혈당 급등락)가 줄어든 결과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무조건 강도가 높을수록 좋은 게 아닙니다. 운동의 원리는 근육과 혈관에 '죽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줘서 세포를 건강하게 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선을 넘으면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제 경험상 하루 7,000보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몸의 무게감이 달라졌고, 주 2회 정도 근력 운동을 추가했더니 허리둘레가 줄었습니다. 무산소 운동이 좋다고 무리하게 따라 하기보다, 자기 신체 상태에 맞는 강도를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수면에서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 핵심입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잠자는 동안 뇌에서 대사 노폐물을 청소하는 뇌척수액 순환 체계로, 수면 3~4단계인 깊은 수면(deep sleep) 상태에서만 활성화됩니다. 낮 동안 쌓인 아밀로이드(amyloid) 단백질 찌꺼기를 제거하는데, 이 아밀로이드가 수년간 축적되면 치매의 원인이 됩니다. 즉, 잘 자는 것은 뇌를 청소하는 일입니다. 자기 전 2시간 스마트폰을 끊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이 달라집니다. 술로 잠을 유도하면 의식을 잃기는 하지만 깊은 수면에 진입하지 못해 청소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취침 전 스마트폰을 끊기 시작한 이후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훨씬 개운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hs-CRP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A.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동네 내과나 주치의에게 혈액 검사 시 hs-CRP 항목을 추가해 달라고 별도 요청해야 합니다. 비용은 수천 원 수준으로 크지 않으며,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측정해 추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마른 사람도 만성염증 위험이 있나요?
A. 있습니다. 겉으로 날씬해 보여도 복부 내장지방이 많은 경우 만성염증 위험은 비만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허리둘레 기준(남성 90cm, 여성 85cm)을 직접 재보는 것이 가장 간단한 자가 점검 방법입니다. 당화혈색소 수치도 함께 확인하면 더 정확합니다.
Q. 만성염증을 줄이려면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나요?
A. 정제 탄수화물과 당분이 높은 음식이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대상입니다. 흰쌀, 흰 빵, 액상 과당 음료 등이 해당합니다. 통곡물, 채소, 적정량의 단백질처럼 소화 과정에서 몸이 일을 해야 하는 식품 위주로 구성하면 혈당 급등락을 줄이고 과잉 칼로리 축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Q. 수면제 대신 멜라토닌을 써도 되나요?
A. 멜라토닌(melatonin)은 수면제가 아닙니다. 뇌에서 "지금 잘 시간이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으로, 수면을 강제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주기를 훈련하는 보조 역할을 합니다. 효과가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하며 1개월 이상 꾸준히 써야 효과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Q. 심리적 스트레스만으로도 뇌졸중이 생길 수 있나요?
A. 심리적 스트레스 단독으로 뇌졸중을 유발하기는 어렵습니다. 뇌졸중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물리적 요인이 오랫동안 혈관을 손상시킨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다만 스트레스가 이미 약해진 혈관의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평소 혈관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만성염증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쌓인 식습관, 운동 부족, 수면 부채가 조용히 혈관과 장기를 흔드는 구조입니다. hs-CRP와 당화혈색소 두 가지 수치만 1년에 한 번씩 확인해도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훨씬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염증과 싸우려 하지 말고, 왜 화가 났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것. 그게 제가 이 주제를 들여다보면서 얻은 가장 실질적인 교훈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의학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gaMhDiwz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