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 염증이 도무지 잡히지 않아 한의원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장부터 고쳐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그 말이 반신반의했습니다. 피부 문제인데 왜 장이냐고. 그런데 식단을 바꾸고 나서 실제로 염증이 줄어드는 걸 경험하고 나니, 장과 몸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더 이상 막연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파고들면서 그 이유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란 무엇인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 전체와 그 유전 정보를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는 몸속 미생물 그 자체를 가리키고, 마이크로바이옴은 거기에 유전 정보까지 포함한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세균, 곰팡이균, 바이러스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몸의 세포 수가 약 38조 개인데, 몸속 미생물 수는 약 39조 개라는 점입니다. 세포보다 미생물이 더 많습니다. 이 미생물들은 장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구강, 피부, 생식계 등 몸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종류만 해도 500종에서 1,000종에 달합니다.
제가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는 게 감이 잘 안 왔습니다. 하지만 알고 나면 오히려 이 미생물들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가 건강 관리의 핵심이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성됩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질 마이크로바이옴을 받으며, 이것이 초기 면역과 뇌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쌍둥이조차 마이크로바이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크로바이옴을 제2의 지문, 혹은 제2의 유전 정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유익균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피칼리박테리움 프로스니치(Faecalibacterium prausnitzii): 식이섬유를 분해해 항염증 물질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유익균입니다.
-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흔히 유산균이라 부르는 균으로, 장 환경을 산성으로 유지해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합니다.
-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 장점막을 구성하는 점액질(뮤신)을 먹고살며 장 벽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데 관여합니다.
이 미생물들은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를 분해해 항염증 효과, 항암 효과, 대사 증진 효과를 내는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식이섬유는 우리를 위한 영양소이기 전에, 유익균의 먹이라는 뜻입니다.
장뇌축, 장이 뇌에 말을 건다
장뇌축(Gut-Brain Axis)이란 장과 뇌가 신경과 혈류를 통해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연결 체계를 말합니다. 뇌에서 장으로 신호가 가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시험 전날 배가 살살 아팠던 경험,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 방향, 즉 장에서 뇌로 신호가 간다는 것은 처음 들었을 때 저도 선뜻 납득이 안 됐습니다.
핵심 통로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주신경(Vagus Nerve)입니다. 미주신경이란 뇌와 장을 직접 연결하는 고속도로 같은 신경망으로, 장 말단에서 감지된 신호를 뇌로 전달합니다. 두 번째는 혈류입니다.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낸 대사 물질이 장 세포를 통해 흡수되어 혈액을 타고 뇌에 직접 도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는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낸 특정 단백질이 식욕 억제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고기를 한참 먹다가 갑자기 샤브샤브 채소가 먹고 싶어지는 것, 그게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생물이 우리의 식품 선택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장뇌축의 교란은 다양한 질병과 연결됩니다. 당뇨, 비만, 아토피, 자폐, 파킨슨병, 치매, 우울증까지 장내 미생물과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유전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마이크로바이옴이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네이처(Nature)에도 장내 미생물과 뇌 건강의 연관성을 다룬 연구들이 꾸준히 게재되고 있습니다.
장과 피부의 연결, 즉 장-피부 축(Gut-Skin Axis)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저처럼 피부 염증 문제로 고민하다가 장 건강을 먼저 챙기라는 말을 들은 분이라면, 이 연구들이 더 와닿을 것입니다. 한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막연한 경험칙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는 걸, 뒤늦게야 알게 된 셈입니다.
유익균을 지키는 식단, 그리고 분변이식의 가능성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Diversity)이란 몸속에 여러 종류의 미생물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양성이 높을수록 하나의 균이 사라지더라도 다른 균이 그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같은 원리입니다. 반대로 다양성이 무너지면, 원래 좋은 역할을 하던 균이 환경 변화에 따라 독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이 다양성을 지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식이섬유와 발효식품 섭취입니다. 제가 한의원 이후로 식단을 바꾸면서 아침 공복에 유산균을 챙기고, 김치나 된장처럼 발효된 음식을 의식적으로 더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몸으로 체감되니 계속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항생제를 복용한 후 유산균을 먹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저도 늘 궁금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 복용 후 원래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이 가장 빨리 회복된 방법은 자기 분변을 이식받는 것이었고, 오히려 유산균을 먹은 그룹이 자연 회복 그룹보다 회복이 느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산균 제품이 일시적인 정착에 방해가 된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분변이식(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이란 건강한 사람의 변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치료법입니다. 현재까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분변이식 치료제는 단 두 건으로, 모두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C. difficile) 감염 치료에 적용됩니다. 치료 효율이 90%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 FDA 공식 발표에서도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폐, 파킨슨병, 비만 등에서도 분변이식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효과가 나타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립니다. 어떤 조건에서 원하는 효과가 나오는지 아직 예측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장 만병통치 치료법이 되기는 어렵지만, 맞춤형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산균을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좋아지나요?
A. 유산균 섭취가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연구에 따르면 유산균 제품 속 균이 장에 완전히 정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식이섬유와 발효식품을 꾸준히 섭취해 기존에 있는 유익균의 먹이를 공급하는 것이 장내 환경 개선에 더 근본적인 접근입니다. 유산균 보충제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되, 식단 자체를 바꾸는 것이 우선입니다.
Q. 장내 미생물이 정말 우울증이나 자폐에도 영향을 주나요?
A. 현재 연구들은 장내 미생물과 뇌 건강의 연관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장뇌축을 통해 미생물이 만든 물질이 신경계에 영향을 준다는 경로가 밝혀지고 있으며, 자폐 환자에게 건강한 분변을 이식했을 때 행동 지표가 개선됐다는 임상 보고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Q. 항생제를 먹은 후 장 회복을 위해 뭘 먹어야 하나요?
A. 항생제 복용 후에는 장내 균총이 교란됩니다. 이 시기에 유산균 보충제를 먹으면 오히려 자체 회복이 느려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통곡물, 그리고 김치나 된장 같은 발효식품을 충분히 섭취해 기존 유익균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Q. 마이크로바이옴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건강한 식단도 사람마다 다른 건가요?
A. 원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쌍둥이조차 마이크로바이옴이 다를 만큼 개인차가 큽니다. 다만 식이섬유와 발효식품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식재료를 먹을수록 미생물 다양성이 높아진다는 기본 원칙은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라면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통한 개인화 접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Q. 분변이식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기증자의 분변을 혐기 환경(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처리해 미생물을 추출한 뒤, 위산을 중화시킨 용액과 함께 환자의 위 또는 장으로 주입합니다. 유럽에서는 주로 경구 투여 방식을, 미국에서는 장 하부 주입 방식을 사용해 왔습니다. 현재 FDA 승인을 받은 제품은 먹는 형태와 좌약 형태 두 가지입니다.
피부 염증 때문에 한의원을 찾았던 그날, 장을 먼저 고쳐야 한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던 저로서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그 퍼즐 조각을 맞춰준 느낌이었습니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은 식단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 이게 이 연구가 가진 가장 실용적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당장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식사에 채소 한 접시 더 올리는 것, 발효식품 조금 더 챙기는 것, 그것이 39조 마리의 몸속 동료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문제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4CAVFaJ_2Y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4567-7 https://www.fda.gov/vaccines-blood-biologics/biologics-approvals/fda-approvals-fecal-microbiota-products